평점: 8/10
배트맨은 거의 9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수많은 모습으로 우리 앞에 등장했다.
만화 속의 어둠의 기사부터 영화 속 영웅, 애니메이션의 탐정, 그리고 Arkham 시리즈의 강력한 액션 히어로까지. 각각의 작품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배트맨이라는 캐릭터를 해석해왔다.
그렇다면 이 모든 배트맨을 하나의 게임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TT Games의 LEGO Batman: Legacy of the Dark Knight가 내놓은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레고로 만들면 된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단순히 배트맨을 귀엽게 만든 패러디 게임에 그치지 않는다. 수십 년 동안 이어진 배트맨의 역사를 영화와 게임, 만화 곳곳에서 가져와 레고 특유의 유머로 재구성하고, 여기에 거대한 오픈월드 고담시를 더했다.
결과적으로 Legacy of the Dark Knight는 지금까지의 LEGO 게임 가운데서도 가장 야심찬 작품 중 하나가 됐다. IGN 역시 8/10을 주며 훌륭한 오픈월드와 뛰어난 배트맨 패러디를 높게 평가했다.
배트맨의 역사를 한꺼번에 만나다
이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배트맨 팬이라면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장면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1989년 영화 Batman의 장면부터 현대적인 영화와 만화, 그리고 Arkham 시리즈에서 가져온 요소까지 다양한 시대의 배트맨이 하나의 세계 안에서 뒤섞인다.
그렇다고 원작 장면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아니다.
TT Games는 익숙한 장면들을 레고식으로 비틀고 서로 다른 작품의 요소를 섞는다. 진지해야 할 순간에 엉뚱한 농담을 던지고, 유명한 장면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변형한다.
이런 패러디가 재미있는 이유는 단순히 웃기기 때문만은 아니다.
배트맨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가능한 농담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게임 곳곳에서 개발진이 배트맨의 역사와 팬들이 좋아하는 요소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가 느껴진다. IGN 역시 거의 모든 배트맨 영화의 장면을 재해석하는 동시에 만화의 오래된 설정까지 끌어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이번에는 고담시 자체가 주인공이다
스토리 미션도 재미있지만, Legacy of the Dark Knight가 진짜 빛나는 곳은 오픈월드 고담시다.
이번 고담은 이전 LEGO 게임의 작은 허브 지역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높은 빌딩 사이를 달리고, 배트맨으로 도시를 활강하고, 차량을 타고 거리를 질주하면서 곳곳에 숨겨진 비밀과 수집품을 찾아다닐 수 있다.
고담은 단순히 넓기만 한 공간도 아니다.
골목과 건물, 상점, 지하 공간 등 곳곳에 작은 활동이 배치되어 있어 목적 없이 돌아다녀도 무언가를 발견할 가능성이 높다.
IGN이 오픈월드 고담을 게임의 가장 뛰어난 부분으로 꼽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딕풍의 도시 곳곳에 수백 개의 수집품과 다양한 활동이 배치되어 있어 메인 스토리를 잠시 내려놓고 도시 자체를 탐험하는 재미가 상당하다.
레고와 Arkham의 만남
게임플레이에서 가장 흥미로운 변화는 전투다.
기존 LEGO 게임의 전투는 비교적 단순했다. 적을 공격하고, 주변의 물건을 부수고, 퍼즐을 해결하는 것이 기본적인 흐름이었다.
하지만 Legacy of the Dark Knight는 여기에 Batman: Arkham 시리즈의 영향을 강하게 더했다.
배트맨은 여러 적 사이를 빠르게 이동하며 공격하고, 적의 움직임에 대응하며 콤보를 이어갈 수 있다. 주변 환경을 활용하거나 특수 능력을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덕분에 이전 LEGO 게임보다 전투가 훨씬 역동적으로 느껴진다.
배트맨이 여러 적 사이를 오가며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은 확실히 Arkham을 연상시킨다. 물론 LEGO 게임답게 진지함보다는 유쾌함이 훨씬 강하지만, 기본적인 액션의 뼈대는 상당히 발전했다.
하지만 전투는 반복되는 순간이 있다
전투 시스템이 발전했다고 해서 완벽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적과의 전투 구조가 생각보다 빨리 반복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다양한 공격과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 재미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비슷한 적을 비슷한 방식으로 처리하는 상황이 계속된다.
특히 여러 전투 구간에서 “이번에도 비슷한 적들을 상대하는구나”라는 느낌이 들 수 있다.
IGN 역시 전투를 현대적으로 발전시키려는 시도 자체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했지만, 반복적인 적 구성과 단조로운 전투 구조 때문에 그 장점이 충분히 살아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즉, 전투 시스템은 좋아졌지만 전투 디자인까지 같은 수준으로 발전한 것은 아니다.
퍼즐은 여전히 LEGO 게임의 핵심
액션만으로 게임을 채우지는 않았다.
LEGO 시리즈 특유의 퍼즐 역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각 캐릭터는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특정 캐릭터만 사용할 수 있는 장치를 이용하거나 환경을 파괴해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한다.
배트맨의 장비 역시 퍼즐 해결에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이런 구조 덕분에 단순히 적을 쓰러뜨리는 것보다 주변 환경을 관찰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특히 여러 캐릭터의 능력을 조합해 하나의 퍼즐을 해결하는 과정은 LEGO 게임 특유의 협동적인 재미를 잘 살린다.
그리고 당연히 무언가를 부수면 LEGO 조각이 우수수 떨어진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배트맨만의 장비가 게임을 풍부하게 만든다
배트맨 하면 떠오르는 장비도 빠지지 않는다.
배터랭, 그래플링 훅, 다양한 탐정 도구 등이 등장하며, 각각은 전투뿐만 아니라 탐험과 퍼즐에서도 활용된다.
특히 새로운 장비를 얻을수록 이전에는 접근할 수 없었던 장소가 열리는 구조가 흥미롭다.
처음 방문했을 때는 그냥 지나쳤던 장소가 나중에 새로운 능력을 얻은 뒤에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이런 메트로배니아적인 탐험 구조는 오픈월드의 수집 요소와 잘 어울린다.
결국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고담을 다시 돌아다니게 된다.
“아까 저곳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지금은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계속 들기 때문이다.
차량을 타는 것도 재미있다
고담의 넓은 도로를 돌아다니려면 차량이 필요하다.
그리고 LEGO Batman에서 차량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배트모빌과 텀블러를 비롯한 다양한 차량을 직접 조종할 수 있으며, 차량마다 조작감과 활용 방식이 다르다.
특히 영화 The Dark Knight의 텀블러는 묵직한 느낌을 강조해 도시의 LEGO 구조물을 부수고 지나가는 재미가 상당하다.
건물을 박살내고 LEGO 조각을 쏟아내면서 고담을 질주하는 것은 단순하지만 묘하게 중독성이 강하다. IGN 역시 텀블러의 무게감과 파괴 효과를 특히 인상적인 부분으로 언급했다.
수집품이 너무 많다고 느낄 수도 있다
오픈월드 고담의 장점은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
도시 곳곳에는 정말 많은 수집품과 숨겨진 요소가 존재한다.
배트맨 팬이라면 하나하나 찾아보는 과정이 즐거울 수 있지만, 모든 것을 수집하려는 플레이어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특히 게임을 100% 완료하려고 하면 비슷한 활동을 반복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하지만 이것은 LEGO 게임의 전통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메인 스토리를 빠르게 끝내고 싶다면 수집품을 무시하면 되고, 고담을 구석구석 탐험하고 싶다면 수십 시간 동안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된다.
스토리는 재미있지만 최고의 배트맨 이야기는 아니다
이 게임의 스토리는 배트맨의 여러 시대와 작품을 하나로 섞어 만든 거대한 패러디에 가깝다.
그래서 재미는 있지만, 깊이 있는 배트맨 서사를 기대한다면 조금 아쉬울 수 있다.
배트맨과 주요 캐릭터의 관계를 깊이 파고들거나 복잡한 심리적 이야기를 전개하기보다는, 익숙한 장면과 캐릭터를 활용해 즐거움을 제공하는 데 집중한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LEGO 게임이라는 장르를 생각하면 상당히 적절하다.
무거운 배트맨 이야기를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익숙한 장면을 LEGO식으로 뒤틀면서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낸다.
IGN 역시 게임의 이야기가 배트맨 최고의 작품들과 나란히 놓일 정도로 강력하지는 않지만, 배트맨의 대표적인 순간들을 훌륭한 LEGO 패러디로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혼자 해도 좋고, 함께하면 더 재미있다
LEGO 게임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역시 협동 플레이다.
Legacy of the Dark Knight 역시 친구나 가족과 함께 즐길 때 상당한 재미를 제공한다.
서로 다른 캐릭터의 능력을 활용해 퍼즐을 풀고, 함께 고담을 돌아다니며 수집품을 찾는 과정은 혼자 플레이할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특히 게임 자체의 난이도가 비교적 낮기 때문에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과 함께 즐기기에도 부담이 적다.
배트맨을 좋아하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플레이하기에도 좋은 구조다.
레고 게임의 새로운 방향
흥미로운 점은 이번 작품이 LEGO 게임의 전통적인 공식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서도 그 범위를 상당히 확장했다는 것이다.
과거 LEGO 게임은 정해진 레벨을 진행하고 캐릭터를 바꾸며 퍼즐을 해결하는 구조가 중심이었다.
하지만 Legacy of the Dark Knight에서는 고담이라는 거대한 공간이 게임의 중심으로 올라왔다.
스토리 미션을 클리어한 뒤에도 도시를 계속 돌아다닐 이유가 있다.
새로운 캐릭터를 얻으면 새로운 장소에 접근할 수 있고, 새로운 장비를 얻으면 이전 지역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비밀을 찾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게임이 단순히 “레벨을 하나씩 깨는 LEGO 게임”에서 벗어나 하나의 거대한 배트맨 놀이터처럼 느껴진다.
배트맨 팬을 위한 거대한 선물
무엇보다 이 게임은 팬 서비스가 엄청나다.
영화 팬이라면 영화 장면을 알아볼 수 있고, 만화 팬이라면 오래된 설정을 발견할 수 있으며, Arkham 팬이라면 익숙한 시스템과 연출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LEGO라는 형식 덕분에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섞인다.
이런 점이 Legacy of the Dark Knight의 가장 큰 장점이다.
진지한 배트맨의 역사와 LEGO의 유쾌함이 충돌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장면들이 만들어진다.
배트맨이 아무리 진지하게 고담을 지키려고 해도 결국 LEGO 캐릭터라는 사실이 농담의 핵심이 된다.
그리고 그 농담이 상당히 자주 성공한다.
총평
LEGO Batman: Legacy of the Dark Knight는 배트맨의 역사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LEGO 상자에 집어넣은 게임이다.
1989년 영화부터 현대 영화, 만화, Arkham 시리즈까지 다양한 배트맨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으며, TT Games는 이를 단순히 복제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유머로 재해석했다.
전투는 과거보다 훨씬 발전했고, 퍼즐과 캐릭터 능력은 LEGO 시리즈의 전통적인 재미를 유지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고담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놀이터가 되었다는 것이다.
도시를 활강하고, 차량을 몰고, 수집품을 찾고, 숨겨진 장소를 발견하는 과정은 스토리 미션보다 오히려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IGN 역시 오픈월드 고담이 이 게임을 진정으로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핵심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반복적인 전투와 다소 단순한 스토리는 아쉽다.
하지만 이 게임이 목표로 하는 것은 배트맨의 가장 진지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배트맨을 마음껏 가지고 노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표만큼은 아주 훌륭하게 달성했다.
고담의 어둠은 그대로지만, 이번에는 모든 것이 LEGO로 만들어졌다.
그 결과 LEGO Batman: Legacy of the Dark Knight는 배트맨 팬들에게 보내는 거대한 러브레터이자, 지금까지의 LEGO 게임 중에서도 손꼽힐 만큼 야심찬 작품이 됐다.
최종 평점: 8/10

